일본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 는 누가 쓴 것 일까?.FUN FACT

일본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 는 누가 쓴 것 일까?.FUN FACT 


오늘은 일본의 장편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겐지 모노기타리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장편 소설로 이야기 됩니다.
무라사키시키부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사에도 
한 획을 그을 만큼 뛰어난 작품
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문학의 기초가 되는 작품이지만 이 장편 소설의 작가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또한 작가의 실명을 아는 사람은 전무 후무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라사키 시키부 라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책에 나오는 여주인공인 무라사키노우에 사람들에게 알려 졌고
그녀의 오빠가 시부키 라는 관직 명을 담당햤기 때문에 

무라사키시우에의 무라사키와 시키부라는 관직을 따서 무라사키 시키부 라는 
필명을 썼을 것으로 추측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가 실명을 밝히기 꺼린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유는 일본 11세기 궁궐에 살던 여자 관리 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귀족 아년자의 이름은 공주 이외에는 공개 하지 않았던 풍조가 이를 뒷 받침 하고 있습니다.

그녀에 대해 구체적인 업적과 그녀의 실명은 비밀로 남아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미 지난 수백년동안 그년의 생활방식이나 일생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습니다.

그중 일부 자료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 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기는 그녀가 4년에 걸처 쓴것으로 아직까지 보존 되어 있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후지와라 가의 집안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년는 11세기 초 군관출신인 후리지와 센교와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잃게 됩니다.

겐지 모노가타리
젋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무라사키 시키부는 집에서 은거했으며 
이때부터  겐지 모노가타리를  집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던중 그녀는 아버지의 소개로 1005년 궁으로 들어가 관리가 되게 됩니다.
궁으로 들어간 그녀의 임무는 19세의 황후 아키코에게 백자이의 시나 
일본 서기 같은 책을 설명해 주는 일 이였습니다.

그리고 이치조 천황이 죽자 아키코는 시녀들과 함께 작은 궁으로 이동 하게 됩니다.

겐지 모노가타리 라는 작품이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작가 실명이 없어서도 아니고 작가가 여성 이였기 때문입니다.
11세기 일본을 생각 하면 당연한 이유 라고 생각이 듭니다.
당시 여자들은 귀족이라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멋진 소설을 쓸수 있었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당시 일본 남자들이 주로 읽고 쓰는 글자는 한문 이였습니다.

한문은 표준 문자였고 일본어는 일상 생활에서 또는 여인들만 사용하던 문자 였기 때문에
일본어를 쓰는 것은 여성이 오히려 더 자유로웠습니다.

그 시기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봤을때 겐지 모노가타리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스케일이
남 달랐습니다.


이 장편 소설의 내용은
젊은 황태자 히카루겐지와 그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남편을 잃은 그는 소일거리 삼아 겐지 모노가타리를 쓴것으로 여겨 집니다.
무라사키시키부

무라사키 시키부는 이제 세상에 알려 지기는 했지만 그년가 쓴 겐지 모노가타리는 아직도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무라사키 시키부의 나이는 ?
언제 겐지 모노가타리를 완성 했는가 ?
등등 사람들은 그저 상상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 훌륭한 작품을

언제 누가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서
가설과 추측만이 있을뿐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썼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큰거 같습니다.

오늘은 일본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뒷 이야 기들이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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